제 1 호 SNS와 나의 SNS 사용에 대한 평가
최다빈명예기자 (국어교육과 201710356) 원등록일 : 2021-03-08 재등록일 : 2023-11-02 SNS란 Social Networking Service의약자로온라인상에서이용자들이인적네트워크를형성할수있게해주는서비스이다. 2019년 5월 30일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SNS 이용추이및이용행태분석’ 보고서에따르면국민의 48.2%가 SNS를이용하고있다고한다.1)연령별 SNS 사용률은 20대가가장높은데무려 82.3%이다. 국민의절반정도가, 그리고 20대의경우 5명중 4명이상이 SNS를사용한다는것이다. 이글을통해나는이렇듯많은사람들이이용하는 SNS의장점에대해평가한후, ‘SNS 중독’이라는문제를기준으로나의 SNS 사용에대해평가하도록하겠다. SNS의장점 사람들은왜 SNS를할까? SNS의장점이무엇이기에? 내가생각하는 SNS의장점으로는소통, 표현, 정보공유가있다. 첫번째로, SNS는 ‘소통의장’이다. SNS에서사람들은많은시간댓글과메신저를이용해대화를나눈다. 어쩌면이제는직접대화를나누는시간보다 SNS를통해대화를나누는시간이더많다고도할수있을만큼. 이러한소통은 SNS를하는실제인간관계에있는사람들과이루어지기도하지만 SNS 상에서형성된새로운인간관계에서이루어지기도한다. 비슷한관심사를가진사람들과자연스레관계가형성되기도하고또의도적으로관계를만들기도함으로써새로운관계가형성되는것이다. SNS 상의관계를지칭하기위한페친(페이스북친구), 인친(인스타친구), 트친(트위터친구)이라는말도있다. 이들은실제세상에서어떤연관관계도없는사람들일지도모르지만 SNS를통해오히려실제인간관계에있는사람들보다더많이소통하기도하기도한다. 언제어디서나소통할수있는 SNS의특징덕분에이런관계가더잘형성된다고생각한다. 두번째로, SNS는표현의욕구를풀어내기에좋은수단이다. 사람들은 SNS를통해자신의일상을공유한다. 오늘무슨일이있었는지, 무엇을먹었는지, 어디를다녀왔는지등일상의사소한부분들을공유하고잘나온사진을올리기도하며, 자기감정이나생각을표현한다. 마지막으로 SNS는정보를얻기에도좋은수단이다. 뉴스를보지않아도실시간으로공유되는정보를 SNS를통해먼저알수있다. 전문가가아닌일반인들도정보를공유하고그에대한개인적인생각들을쓰기때문에여러가지정보에대한사람들의다양한의견도알수있다. SNS 중독 위에서살펴봤듯사람들은 SNS를통해다양한정보들을공유하고, 그에대한자기의견을표현하며그것을바탕으로소통할수있다. 하지만과유불급이라는말이있다. SNS도지나치게사용하면 ‘중독’이다. 모든중독이그렇듯 SNS에중독되면일이나공부의효율이떨어질수있으며, 일이나공부를미루기도하는등일상생활에문제가생길수있다. 그뿐만이아니다. 우리뇌에있는쾌락중추에서는기분을좋게만드는도파민을분비하는데, 무언가에중독되면쾌락중추가자극되어도파민의분비량이증가된다고한다. 실제로 SNS에중독된사람들이 SNS를할때의뇌영상을확인한결과코카인중독자가코카인을흡입할때와같은변화를보였다고한다. 이러한자극이반복되면점점강한자극에익숙해지고웬만한자극에는반응하지않게된다. 그리고자극을멈추고일상으로돌아오면지루하고답답한기분이들게된다. 그러면서뇌는점점 ‘흥분을추구하는뇌’로변하고현실에무감각해지게된다. 이것은우울이나불안과같은정신적인문제로까지이루어질수있다. 다른중독과는달리 SNS 중독만이가지는문제점도있다. 앞에서도언급했듯 SNS를통해현실과는또다른관계가형성되기도한다. SNS를통한관계는현실에서의관계보다더즉각적이기때문에현실에서의관계에서와는다른종류의만족감과즐거움을준다. 이러한 SNS 관계에집중하다보면현실에서의관계를등한시하게되어문제가생길수도있다.2) 나의 SNS 사용평가 그렇다면이번에는 SNS 중독자가진단표를바탕으로나의 SNS 사용에대해평가해보려고한다. SNS 중독은아직까지스마트폰중독의일부분으로다루고있다. 그래서 SNS 중독을진단할수있는공식적인진단법은없지만인터넷에여러가지 SNS 자가진단법이나와있다. 그것들을종합하여집착, 갈등, 기분변화, 내성, 금단증상, 재발이라는 ‘중독’의일반적인특징에따라분류하여직접표를만들어보았다. SNS 중독 자가진단표 구분 항목 집착 -SNS로 자신의 삶을 모두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에서, 길에서 등 수시로 SNS를 확인한다. -시시각각 상황을 업데이트하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 바로 중계한다. -SNS에 매일, 혹은 일주일에 7개 이상의 게시물을 올린다. -친구들의 소식을 직접 듣는 것보다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익숙하다. 기분변화 -SNS를 하면 감정변화가 있고 즐거움을 느끼거나 멍해진다. -반응이 부족하면 몹시 부끄럽다. 내성 -좋아요 또는 공감을 많이 얻기 위해 거짓 일상을 연출해서 업로드한다. 금단증상 -SNS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재발 -SNS 중단을 시도했으나 얼마 못 가 다시 로그인했다. 주로메신저의용도로만사용하는카카오톡을제외하면내가가장많이사용하는 SNS는인스타그램이다. 따라서나의인스타그램사용을되돌아보며 SNS 사용에대해평가해보겠다. 위의항목들중나에게해당한다고생각하는 3가지항목들을기준으로평가해보도록하겠다. ‘SNS로자신의삶을모두가보고있다고생각한다.’ 나는인스타(인스타그램의줄임말)하는것을굉장히좋아한다. 내가인스타를하기시작했던이유는다른사람들에게나를표현하고싶어서였다. 그런데 SNS의큰기능이 ‘소통’이다보니내가표현을하면그것을보는사람들이반응을보인다. 그러다보니내표현의욕구를채우고스스로의만족을위해게시물을올렸던처음과달리시간이지날수록남에게보이는것에신경을많이쓰게되었다. 게시물 1개를올리더라도정말신경을많이써서올리게되었고더나아가서는내가 ‘나를표현하기위해’를넘어 ‘남에게보이기위해’ 게시물을올리는건아닌가하는생각마저들기시작했다. ‘시시각각상황을업데이트하거나재미있는일이있을때바로중계한다.’ 사용시간의측면에서보았을때나는 SNS 중독은아니라고생각한다. 나는인스타계정을비공개로해두고실제친구들과만맞팔로우를하고교류한다. 모르는사람들에게내정보가유출되는것을막기위해서이다. 그렇기때문에내피드에하루에글이그리많이올라오지않고나는대개하루에한번, 자기전에만들어가글을모두확인한다. 그렇지만아주가끔은당장그순간에무언가를올리고싶을때가있는데그럴때는들어간다. 그리고내가처음 SNS를시작했을때에는특별하게정말기록하거나표현하고싶은것이있을때에만게시물을올렸다. 그런데요즘은그횟수가점점늘어나고있다. 특히 ‘스토리’ 기능이생기면서그랬다. 스토리는페이스북에서는 ‘나의오늘’이라고불린다고하는데그말이이기능을더잘설명해주는것같다. 말그대로오늘있었던일들을올리는것이고이것은글로남지않고 24시간동안만보이다가사라진다. 주로게시물보다는상대적으로가벼운일상의순간순간들을공유하는데에사용된다. 스토리기능이생기면서나는사소한일상도올리는습관이생겼다. 일상의순간순간조금이라도특별한일이생기면 ‘스토리에올려야지’하는생각이들기도한다. ‘SNS를하지않으면불안하다’ 가끔너무바쁘고정신이없으면며칠씩인스타를하지못하는경우가있다. 그럴때조금은불안한마음이든다. 글이너무밀려있어서이렇게계속밀리다보면 ‘언제다보지?’ 하는마음이다. 꼭다볼필요는없는데하나도밀리지않고다보고싶다. 사실그리중요한것도아닌데말이다. 사실이글을쓰기이전부터나는나의 SNS 사용습관에대해스스로항상되돌아보고절제하고있었다. 그래서내가중독이라고생각해본적은없다. 그런데이렇게중독진단기준을보고스스로평가를해보면서지금내가중독은아니더라도언제든지중독이될지도모르는상태에놓여있다는생각이들었다. 이와함께 SNS를사용할때어떤목적으로사용할지에대해고민해볼필요가있다는생각이들었다. ‘남에게보이기위해서’가아니라 ‘내소중한순간들을기록하기위해’ 혹은 ‘의미있는내생각과감정을표현하고공유하기위해’ SNS를사용해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그리고중독이되지않기위해서는 ‘절제’가중요하다는생각도들었다. 앞으로무언가를자꾸 SNS에올리고싶다는생각이들면남에게보이는것보다내가그순간의감정을스스로느끼고정리하는게중요하다고생각하며스스로절제하려고노력해야겠다고다짐했다. SNS는우리가가진표현과소통의욕구를채워주며정보를쉽고빠르게나르는좋은수단이지만지나칠경우중독이될수도있다. 이글을읽는사람들도혹시나를위해 SNS가존재하는것을넘어 SNS를위해내가존재하는것은아닌지스스로의 SNS 사용습관을되돌아보았으면좋겠다. 그리고각자가어떤목적으로 SNS를사용할지를정해자신에게도움이되는방향으로 SNS를적절히이용하길바란다. 1) 김유화, SNS(소셜네트워크기반) 이용추이및이용행태분석, KISDI STAT Report 19-10, 2019.05.30.,<,http://www.kisdi.re.kr/kisdi/fp/kr/publication/selectResearch.do?cmd=fpSelectResearch&sMenuType=2&controlNo=14582&langdiv=1> 2) 김슬기, ‘나는소통하고있을까?’ SNS 중독, 삼성화재네이버포스트김슬기의마음치료시리즈, 2017.10.27.,<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236054&memberNo=6716618&searchKeyword=SNS%20%EC%A4%91%EB%8F%85%20%EC%9E%90%EA%B0%80%EC%A7%84%EB%8B%A8&searchRank=3>
제 5 호 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명예기자 한호택 * 공모글 예시 중에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에게 쓰는 편지’에 대입하여 풀어냈습니다. * 아래 링크의 음악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K69cGAwks 친애하는 나의 친구 조지에게. (Dear My Friend, George) 조지. 자네가 폴란드로 떠난 지 벌써 7개월이 되었군. 여기는 이제 장마가 막 시작되어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어. 몇 주 전부터 꼭 두 마리가 한 쌍으로 날아다니는 이상한 날벌레가 잔뜩 출현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것도 곤란할 정도였는데, 장마가 시작된 이후로 물에 약한 그 녀석들이 크게 줄어서 장마에 감사하고 있다네. 방역에 대한 논의와 민원이 여러 차례 오가고 있었지만, 벌레들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 자네가 새로 구했다던 일자리는 버틸 만하길 바라네. 물론 자네의 마음이야 항상 다른 곳에 있어서 영 편하진 않겠지만.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 느낌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괴로움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네.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딴섬에 홀로 있는 그 느낌.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 자네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느낌이지. 그래, 나야말로 자네의 그 ‘낯선 느낌’을 잘 이해할 사람 아닌가. 알다시피 나는 3년 전에 A 대학을 그만두었고 새로 옮긴 B 대학도 인제 그만두려고 하네. 두 대학 모두 재학 당시 전공이었던 컴퓨터공학은 내가 꾸준히 공부해 왔고 그만큼 성과가 잘 나오던 분야임을 떠나서, 흔히들 말하는 ‘미래가 어느 정도는 보장된’ 분야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어. 하기야 만약 내 아들놈이 잘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음악을 하겠다는 말 따위를 하면, 과연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누군가에겐 내 도전이 ‘꿈꾸는 청춘’이라는 이미지에 스스로 취해 감상적인 소리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세상 그 누가 와도 이미 결심한 나의 마음을 바꿔놓을 순 없었어. 부모님도 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찍이 그런 시도를 접은 것 같아. 자네에겐 내 결론 – 음악을 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는 것만 전달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 올해 2월, 나는 B 대학의 신입생 환영 행사에 참여했네. 그건 정말이지 우발적인 일이었어. 평소처럼 나는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는데, 개미처럼 줄지어 강당으로 이동하던 학생들을 발견했지. 그 학생들은 생긴 모습은 모두 달라도 하나 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처음 와보는 곳에서 강당을 찾느라 눈동자가 쉼 없이 굴러가고 있었다는 것이야. 선배 된 나로서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네. 아무튼 도서관에 가는 길에 강당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 행렬에 동참하여 따라가고 있었고, 결국 강당 앞까지 와 버렸지. 강당 입구에는 어떤 선배 – 내겐 선배가 아니겠지만 – 가 줄 선 학생들에게 일일이 학과를 물어보고 어디 어디로 가라고 안내하고 있었지. 나는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음악학부라고 대답했어. 그처럼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속으로는 꽤 놀라워서 그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 되었네. 그렇게 위층의 어떤 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주변의 신입생들에게 말을 걸었네. 나는 예전부터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친해져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어.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없어서 입이 근질거렸거든.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를 버릴 생각이 없었네. 그중 나는 ‘리아’라고 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어. 대부분 신입생은, 아직 그런 대화가 낯선지, 내가 말을 걸면 피하려거나 어딘가 어색해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녀만큼은 내 전공 이야기를 듣고 먼저 찾아와서 내게 말을 걸었지. 그리고 3월, 학기가 시작되었어. 나는 호기심에 음악학부의 전공 수업을 수강했는데, 그곳에서 (나와는 달리) 진짜로 음악을 전공하는 리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 나는 지난번에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고 우리는 매주 수업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자신의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주겠다며 같은 수업을 듣는 어떤 사람을 데려왔어. ‘에그버트’라고 하는 그는 아주 큰 키는 아니지만 건장한 체격에 딱 벌어진 어깨 꼿꼿이 선 허리와, 졸려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빛나는 눈을 가진 청년이었어. 나는 그를 보자마자 우리가 친해질 것임을 깨달았지. 나는 살면서 나와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을 딱 두 명 보았는데, 그게 바로 자네와 에그버트였어. 그래, 언젠간 자네에게도 이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군. 아마 자네와도 잘 맞을 거야.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중에는 매번 옆자리에 앉게 되었어.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먼저 가던 나를 그가 따라왔어. 그는 내가 음악에 대한 열정은 넘치지만 가르침 받을 계기가 없어서 고민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사사한 선생님을 내게 소개해 주겠다고 말하더군. 그땐 거리가 멀어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내 머릿속에 꽤 깊게 남아 있었어. 4월 중순의 어느 날, 나를 꾸준히 괴롭혀 온 ‘낯선 느낌’은 극도로 커져서 이미 나를 잡아먹은 상태였는데 참석할 수업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서 잠에서 깬 그날, 마치 스위치가 탁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전구가 환하게 켜지듯, 내 복잡했던 머릿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단 한 가지 어떤 생각만이 남게 되었지. ‘음악을 전공해야겠다.’ 그렇게 나는 B 대학을 그만두고 세 번째, C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게 되었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현실적인’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 마련되었어야 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망망대해에 뗏목만 타서 던져질 나에게 그야말로 ‘나침반’이 되어 줄, ‘선생님의 존재’였어. 그때 에그버트가 했던 말이 떠올랐고 나는 그를 통해 지금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야. 꽃엔 애정 어린 물과 따스한 햇볕도 필요하지만, 때론 쓰디쓴 비료도 필요하지. 지금의 선생님은 내게 그런 존재야. 선생님 없이는 이 도전도 없었을 거야. 그래서 에그버트에게 감사해. 얼마 전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봤어.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나는 벌써 몇 번이나 봤지.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영화라 자네에게 이 편지에서 그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오히려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하네만, 혹여나 기억하지 못할까봐 간단히 이야기하겠네. 매트릭스는 ‘지배’야. 인간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계들은 인간들을 효과적인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속에 가두었지. 인간들은 일생을 그곳에 갇혀 기계들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네. 「Matrix」(1999)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인간 저항군 모피어스와 네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야. 나는 매트릭스가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우리 현실에도 매트릭스가 분명히 존재해. 내가 느끼는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네의 공허하고 낯선 느낌에 대한 원인이네.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자네의 눈을 가리는 것이야. 속물들이 만들어 낸 허상.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온갖 겉치레들.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 없이 그저 ‘갓생, 갓생’만을 공허하게 외치도록 만드는 허상이네. 그것은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니야. 나도 그들 중 하나였고 자네 역시 그래. 하지만 이젠 내겐 그런 이유로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트릭스’에 갇힌 사람들로 보여. 허례허식, SNS, 껍데기, 편견, 야유, 냉소, 속물들. 이런 것들이 자네 속의 깊은 욕망을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있어. 용기.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야. 나 역시 두렵네. 하지만 진정한 용기란 그 두려움에 대한 강렬한 저항이네. 자네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자네가 침대에 누워 마지막 숨이 다 하는 날 자네를 찾아올 후회는 지금의 두려움을 초월하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시간 따위 없어. 그런 것들이 한 번뿐인 기회를 방해하게 둘 순 없네. 그러니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네오 (”Wake up, Neo.”) 2023년 6월 29일, 자네의 소중한 친구, 백(Baek) 친애하는 나의 친구, 상명대학교 학우들에게. 안녕하세요. 글 쓴 학생입니다. 이 글을 보신 많은 분들이 다음의 두 가지를 궁금해 하실 것이라고 예상하고, 또 실제로 궁금해 하십니다. 1.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의 이야기인가? 궁금해 하시는 것은 이해하나 제 글을 잘 이해하신 분이라면,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면,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것에 더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밝히자면, 유일한 픽션은 조지와 관련된 점입니다. 조지가 폴란드로 떠난 지 7개월이 지났다는 것은 픽션입니다. 조지는 폴란드로 떠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일자리를 구한 것이 아니라,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미 귀국해 있습니다. ^^ 2. ‘백’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도전 ‘백’의 도전은 아래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1lkmRBXGmrXqafPUkkLqCg ‘백’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서는 위의 링크에서 좀 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만 갑자기 링크를 첨부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제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이 글을 쓴 이유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통의 한 사람이 도전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기 위함입니다. 글의 내용에 공감이 되셨거나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은 한 번쯤 방문해보세요. 글의 맨 앞에 함께 첨부한 음악은 브람스 교향곡 1번 4악장입니다. 제가 바라는 ‘백’의 결말은 이 곡의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끝까지 들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 그럼 학우 여러분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 각자의 길에서 파이팅입니다. 아자아자! 2023년 7월 21일, 여러분의 친구, ‘한’(Han) 올림. 참고 문헌 Billy Joel - Piano Man 「Matrix」(1999) 「Good Will Hunting」(1997) 문의 사항은 아래 메일 주소로 연락주십시오. ryanhan9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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