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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12 호 [책으로 세상읽기]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에 현실이 스며든다, ‘회색인간’

  • 작성일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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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756
김지현

[책으로 세상읽기]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에 현실이 스며든다, ‘회색인간’

김동식I요다I 2017.12.27.


  《회색인간》은 작가 김동식이 쓴 단편 소설집이다. 단편이다 보니 다양한 장르가 나오는데 주로 sf, 스릴러, 오컬트 요소가 나온다. 김동식 작가는 ‘오늘의 유머’에서 꾸준히 소설 연재를 하였고 인기를 얻게 되었다. 공장 일과 글쓰기 일을 같이하는 작가는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전달력이 좋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다 드디어 《회색인간》을 펴낸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에 대한 내용을 어디선가 접했을 때 단편임에도 전달력이 좋아 이참에 책을 다 읽어보기로 했다. 하나같이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음에도 뒤로 갈수록 점자 그런 자극에 익숙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이야기가 단조롭다는 소리가 아니라 어느 순간 이 책에 몰입하여 다음 소재는 뭘까? 하고 기다리게 되는 과정이다. 간혹 허무한 결말이 나오면 완전한 해피엔딩을 좋아하던 나에게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소재를 떠올리는 능력은 대단하다. 몇몇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먼저 접했을 만큼 유명하기도 하다. ‘낮 인간, 밤 인간'에서는 서로 다른 이념과 이익을 위해 대립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우팅’은 사회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보여줌과 동시에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는 우리 사회가 차별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민감해져야 하는지를 꼬집고 있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에선 집단지성의 폐해를, ‘어디까지 인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인간의 본질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렇듯 주로 개인의 고민보다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언가(나라, 기업, 외계인, 종교, 신, 우주, 조직 등)에 계층 일부나 사회가 변한 뒤 그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 묘사가 사실적이기도 하고 덤덤한 문장을 내놓기도 해서 오히려 더 진짜 같은 장면이 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에세이형 소설이나 ‘힐링’ 위주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이런 이야기가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오히려 매번 다른 느낌이 들어 읽으면서 쉽게 지루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각 캐릭터에 이입하고 서사에 집중하는 것보단 ‘저런 세계 속에서 나라면?’을 좀 더 묻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이름도 재사용되는 경우가 있고, 주로 지칭도 소년, 소녀, 그, 그녀, 회장, 아버지, 딸, 사내 등등 대명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우리가 ‘직접’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다양한 생각이 필요한 현대인에게 최고의 소설임은 틀림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어린 왕자의 별’이었는데, 배설물이 곧 집이고 음식이며 흙인 행성에 갇힌 사람들이 배설물로 집을 짓고 물건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다소 비위가 상할 만한 내용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았다. 이렇듯 단편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점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다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지금까지 없었던 글의 느낌을 받을 것이다. 선택하는 단어, 문장의 구조가 기존의 익숙함과는 조금 달랐다. 공들여 서술할만한 부분을 문장 하나로 종결짓고 오히려 주목하지 않았던 곳으로 독자들을 유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러한 SF나 스릴러 같은 소설은 작가가 마련해둔 서사의 끝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작가는 예상한 데에서 두 발짝씩 앞지르는 이야기를 만든다.


“김동식 작가의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때로 비웃고 슬퍼하고, 때로 분노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다.” 김봉석 문화평론가의 말이다.


  작가의 농담 같은 이야기는 물 표면의 파동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울림을 준다. 여러 가지의 복합적이고 살아있는 문장들이 이 책에 들어있다.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 킬링타임용으로도 좋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문장의 힘이 있다고 느꼈다. 토론용으로도 좋은 주제일 것이다. 각자 자신이라면 어떻게 반응하고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될 것이다. 가볍게 들리지만 어려운 주제이고, 또 과감히 다가가는 이 소설의 매력을 당신도 느꼈으면 좋겠다. 


김다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