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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677 호 역사 소재 영화, 이대로 괜찮은가?

  • 작성일 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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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2583
송수연

자주 등장하지만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역사 소재 영화는 매번 논란과 역사왜곡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역사영화가 과연 우리에게 올바른 정보와 좋은 영향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현재 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영화를 통해 살펴보자. 

더불어 앞으로 역사영화를 감상할 때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봉오동 전투]

POSTER   STILLCUT

영화 소개 

봉오동 전투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최초의 승리를 이룬 독립군의 전투를 그린 영화이다.



논란 하나. 보존지역 훼손?

 최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가 지난해 11월, 촬영 도중 동강 할미꽃을 멸종시켰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촬영이 끝난 아직까지도 자생지가 복구가 안 됐다며 환경 훼손에 대한 벌금 및 과태료를 강화해달라고 올라온 국민청원 글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 제작사는 영화 촬영 중 일부를 훼손한 건 맞지만 나뭇가지 훼손, 바퀴자국, 총소리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 등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를 모두 취한 상태라고 한다. 또한 환경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김금호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영화 촬영지는 보호종으로 지정된 고유종, 동강 할미꽃 서식지가 아닌 일반 할미꽃 서식지이며 따라서 ‘멸종’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라며 청원 글의 내용을 모두 반박했고, 논란 조장이라고 보았다.


논란 둘. 고증 실패?

 ‘봉오동 전투’는 기존의 팩션 영화와 달리 영화 시작 전 “사실에 근거해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자막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영화의 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봉오동 전투’는 역사를 얼마나 잘 반영했을까?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은 “독립신문에 봉오동 전투의 과정과 승리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영화는 독립신문 제88호에 나와 있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에 의문을 가진 한 누리꾼이 조사한 내용은 달랐다. 일본군 사망자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은 307명, 일본 측은 1명, 중국 측은 52명으로 그 편차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누리꾼은 독립신문 제88호의 내용이 원신연 감독의 말처럼 정확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했다. 정확한 일본인 사망자 수가 영화에 있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감독의 뉘앙스가 자칫하면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인식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 셋. 국가주의와 허구인물?

 역사적으로 봉오동 전투는 일본인들보다 독립군들이 더 많이 죽었고, 그 규모도 매우 작은 전투였지만 그럼에도 포스터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엄청난 전투 현장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명 ‘국뽕’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를 느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에 대해 ‘국뽕’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면 느껴야 할 ‘긍지’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사실을 담아야 하는 역사 영화에서, 실제로 고려령에서 봉오동까지 일본군을 유인한 건 이장하가 아닌 ‘이화일 분대장’이었는데 ‘이장하’의 등장은 왜곡이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이장하(류준열), 황해철(유해진), 마병구(조우진)와 같은 허구 인물의 등장은 역사에 이름조차 기억되어있지 않은 평범했던 독립군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설정한 요소라며 의도를 정확하게 나타냈다.


● ‘봉오동 전투’는 역사를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지만 역사 영화의 고충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태클과 논란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지만, 이름 없는 영웅들의 역사를 생생히 담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잘 반영된 영화라 생각된다. 





[나랏말싸미]

POSTER   STILLCUT

영화 소개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 세종대왕의 마지막 8년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모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과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한 한글 창제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논란 하나. 한글창제는 신미의 주도?

 영화 '나랏말싸미'가 관람객의 혹평을 받고 일찍 막을 내렸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에 세종대왕이 아닌 불교 승려 신미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혹은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으로 한글을 창제했다는 정설을 부정하는 셈이다. 영화에서는 신미가 세종의 조력자 수준을 넘어 한글을 주도적으로 창제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를 두고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붉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한 것은 1443년인데, 신미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46년으로 기재되어 있다. 기록으로 봤을 때, 영화가 묘사하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글 창제 과정에서 신미 대사가 관여했다는 것은 극소수의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영화는 영화일 뿐 사실과 같을 수는 없으므로, 대중이 사전에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논란 둘. 원각선종석보

 불교계는 훈민정음 신미창제설의 근거로 1435년 한글과 한자로 된 불교 고서 '원각선종석보'가 신미에 의해 출간된 것을 꼽는다. 1443년 창제된 훈민정음보다 8년 앞선 시기에 이미 한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각선종석보가 위작이라는 것은 그동안 계속 지적되어왔다. 복사본의 서체가 당시 시대와 맞지 않고, 위작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오기와 탈자 등 곳곳에서 보이는 실수가 그 이유이다. 특히 세종대왕 당시 책이라면 '권제1' '권1' 등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원각선종석보 복사본에는 '제1권'이라는 현대식 어법이 사용됐다. 훈민정음해례본에서도 한글 창제자는 세종대왕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포년도인 1446년에야 신미의 이름을 알게 됐다. 

 많은 한글 창제설에 대해 하나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영화의 중심 소재로 넣은 부분은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팩션’의 요소가 들어간다 해도 근본적인 역사가 사실이라는 점이 먼저 보장되고 나서 이를 전제 조건으로 상상의 요소가 허용될 것이다.


논란 셋. 불교신자 감독의 영향?

 '나랏말싸미'가 명백한 역사적 사실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고증을 시도한 것은 신미창제설을 믿는 불교 신자 조철현 감독의 신념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불교 방송에 출연해 신미대사에 대해 "세종대왕과 나란히 세워도 될 정도의 위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때문인지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세종대왕은 완벽한 군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애민 정신이 강한 왕이지만, 늙고 병들어가는 모습에 조급함을 보이는 한없이 약한 왕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역사왜곡을 논하며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무리한 설정과 연출 때문일 것이다.


● 나랏말싸미는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 자칫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회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영화 나랏말싸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마저도 왜곡되어 그려졌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 영화를 바르게 해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때


 사람들이 이토록 영화의 역사 왜곡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영화가 대중에게 끼치는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때문이다.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은 역사나 진지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 대신 편하고 쉬운 여가를 추구하며 쉽고 간편하게 역사를 배우고 즐긴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역사를 알아가야 할까. 

 영화에는 허용되는 선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곁들여 창작한 ‘팩션’인지 명백한 역사 왜곡인지 그 선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영화 속의허구적 사실을그대로 믿어버리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지양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관심을 가지고 많은 견해와올바른 역사를 공부하고 비교해야 한다. 그 후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고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내용을 판단해 올바르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역사영화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역사왜곡 논란이 영화를 본 이들에게 역사를 바르고 정확하게 알게 하기 위한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