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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상

[소설 가작] 미래로부터

  • 작성일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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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796
윤소영

미래로부터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62599


  그 동네는 음식에 소금치는 법이 없었다바닷가 근처에 자리 잡은 오래된 마을은 아침에 깔린 안개에도 소금기가 있어 입안이 짜다 못해 썼다한아네 집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횟집을 운영했다바람이 펄럭거리는 소리와 생선이 펄덕대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곳이었다한아는 그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다동정이 헤픈 편은 아니었으나 횟집 앞 수조를 들여다보며 한아는 자주 동정했다저 좁은 수조가 온 세상일 거라 생각하니 눈 몰린 광어가 측은했다.


  일곱 살 무렵에 한아는 장사하는 엄마 몰래 수조에서 광어를 꺼내 품에 안았다물 안에서는 숨은 쉬는지 움직임 하나 없더니 한아의 품 안에선 펄떡거리며 생명의 끈을 튕겨댔다그날따라 한아는 물고기를 바다에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였다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그 생선을 품고 근처 바다로 향했다미끈거리는 놈은 힘이 어찌나 센지 한아의 두 팔이 후들거렸다작은 보폭으로 뛰듯이 걸었다모래사장을 가로지를 때쯤엔 광어가 얌전해졌다물고기가 얌전하다는 뜻은 좋은 게 아니었다아가미 달린 것들이 그랬다한아가 걸음을 멈추고 광어를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려줬다.


  바닷속에서 어색한 듯 힘겹게 꼬리를 턱턱 흔드는 모습을 지켜봤다그러다 이내 배를 뒤집었다파도가 치는 물결 따라 몸이 둥둥거렸다자신의 밑바닥을 보이며 광어의 숨이 멎었다이러려던 게 아닌데한아의 눈가에 물이 차올랐다눈물이 바다로 한 방울씩 떨어졌으나 고작 인간의 눈물이라 티가 나질 않았다어쩌면 그 광어의 순리는 바다가 아닌 수조였을 수도 있겠구나무언의 깨달음과 무언의 순응을 배운 한아의 뒤로 잔뜩 화가 난 엄마가 보였다장사할 생선을 대체 왜 네 맘대로 꺼낸 거야엄마의 불같은 호령에도 한아의 시선은 바다에 박혀있었다다시는 살아있는 무언가에 동정하지 않을 거야어린 한아는 체념을 배웠다.


  그런 한아가 다시 동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미래였다.


*


  나는 미래라고 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미래가 아닌 걸 알았다교탁 옆에 서있는 애는 겉모습은 인간이었으나 무언가 축축했다맨 끝자리에서 무심히 시선을 던지는 한아도 저 아이가 인어라는 걸 알았다한낱 인어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처럼 사라질 인어인간의 대타인 인어인어는 흔했다특히 바닷가 마을에선 더더욱 그랬다아마도 정부에서 관리하는 인어일 것이다미래라는 인어 앞으로 수십 명의 목숨줄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인간들은 인어를 물건 대하듯 대했다아무리 의학이 발전하고 과학이 새로운 기술을 내놓아도 죽음은 인간 곁에서 떠나질 않았다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누구는 간이 필요했고 누구는 심장이 필요했다인간이 인간에게 자신의 장기를 주는 일은 확률이 희박했다그 확률에 대기자들은 목숨을 걸었다숨 막히는 확률에 질린 생명공학자들이 눈을 돌린 게 인어였다.


  미래는 장기기증 전용 인어로 태어났다인간인지 어류인지 아주 애매했다미래는 누군가의 따뜻한 뱃속이 아닌 차가운 시험관에서 탄생했다축복이 아닌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 태어난 미래는 불릴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다탄생부터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었다그렇게 태어난 모두를 미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공장식이었다양계장에서 닭 키우듯 인어를 키웠다겨우 몸 하나 들어갈만한 수조를 빽빽이 채워 인어를 한 마리씩 넣었다그게 인어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그렇게 길러 낸 인어가 처음으로 밖을 나서는 순간이 있었다목적지는 병원이었고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가는 게 순간의 마지막이었다세상의 공기를 처음 들이신 장기들이 각기 다른 인간의 몸뚱어리로 이식됐다인어는 가죽만 남은 채 태워졌다운명이 기구했다.


  그러다 윤리 단체가 공장식 인어 사육을 전면 교정하라며 시위를 시작했다표면적으로는 인어의 권리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은 개살구였다공장식으로 자란 인어들의 장기 상태는 질이 떨어졌다심장 판막이 헐겁게 자라는 인어가 존재했고 폐에 구멍이 뚫려 물이 자꾸만 몸속으로 들어오는 인어가 존재했다가장 소리를 크게 외친 건 윤리 단체의 회장이었다우습게도 회장은 작년에 어린 인어의 콩팥을 이식받았다그것에 대한 속죄인지 혹은 또다시 한번 필요할 수도 있는 여분의 콩팥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버렸고 인어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도대체 이 순리는 누가 만들었지희생은 위해서 생기면 안 되는 것인데 인간들은 지구보다 역사가 짧아 그걸 몰랐다.


  결국 윤리 단체들과 시민들의 반발로 몇 해 전 법이 개정됐다장기이식용 인어는 만 17세까지 일반 사회에서 어울려지내야 했다학교를 다니며 인간 학생들과 지내야 했다건강해야 했다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창살 없고 아주 넓은 수조와 다를 바가 없었다국가가 지정해 준 지역에 인어를 할당제로 배부했다배부가 꼭 맞는 표현이었다마치 반려견을 들여오듯 지역에서 정해진 숫자의 인어를 도맡았다.


  그런 사회는 미래로부터 차가웠다미래가 가진 하나의 심장 앞에 천 명씩 줄을 서놓고 정작 심장의 주인인 미래에게는 냉담했다미래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앗아갔다전화를 걸어 가족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행위조차 미래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애초에 가족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미래는 대부분 홀로 태어났고 홀로 떠났다자연스러워 아무도 반문하지 않았다감히 인간에게 반문하는 인어 따위는 없다인간은 인어에게 전지전능한 신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런 인어 미래가 한아의 반으로 왔다아마 할당제로 들여온 인어 중 하나일 것이다한아는 시선을 돌렸다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담임선생님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빙 둘러보다 한아의 옆자리에서 눈동자가 멈췄다짧은 소개를 마친 미래를 1분단 끝자리로 안내했다드르륵듣기 싫은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한아의 옆자리로 미래가 앉았다미래는 숨소리가 작아 인기척조차 없었다인간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니고한아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미래는 조용했다마치 그래야 될 것처럼 소리를 죽이고 존재감을 죽였다수업에 성실히 임했고 숙제도 척척해왔으나 어쩐지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보였다한아가 옆자리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한아도 소란스러운 것은 질색이었기에 짝꿍으로서 미래가 싫지 않았다허나 모든 마음이 한아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야 너 진짜 인어야?”

  “꼬리 보여줘 봐.”

 “아가미는숨은 아가미로 쉬나?”


  세상에 딱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그게 관심과 무관심이라면분명히 무관심이 나았다미래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혹은 인간들에게 길러지면서 습득한 결론은 그랬다미래는 분노보다 순응을 먼저 배웠다화를 가르치기 전에 침묵과 복종을 가르쳤다평범한 인간 고등학생들처럼 학교생활을 하라는 것이 아니란 걸 안다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지만 어쩐지 미래는 자기가 죽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그게 슬프거나 원망스러운 건 아니었다마치 우주를 관통하는 순리이겠거니 받아들였다발악하고 싶지 않았다때로는 인정하는 것이 편한 순간이 있었다.


  세상이 관심과 무관심 둘로 나뉘는 것처럼 이 작은 반 아이들 역시 그랬다무관심은 차라리 낫다미래가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주는 아이들은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문제는 관심의 영역에 있는 아이들이었다아주 좁은 어항에 그득 찬 물고기들 사이에 미끼로 내던져진 격이었다줄에 대롱대롱 걸린 미래는 아주 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말 좀 해봐아 인어라서 목소리가 안 나오나?”


  낄낄거리는 소리가 역했다미래는 가만히 작게 웃고만 있었다쉬는 시간에 책상 위로 엎어져있던 한아는 귓가에 닿는 소리에 잠이 깼다깨고 보니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샜다뭘 좋다고 웃고 있는 거야미련한 건지 천치인지 헷갈렸다자기 세뇌를 걸었다이건 동정이 아니야그냥 시끄러워서난 시끄러운 게 싫으니까동정은 아니야한아가 주문을 세 번쯤 외우고 참다 참다 입을 뗐다.


  “얘 인어라서 말도 못 하고 내가 대신 말해줘야 되는데 지금 너네 다 꺼졌으면 좋겠대.”


  입꼬리가 전혀 올라가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말이 뚝뚝 갈라지는 얼음 같아 미래는 입술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닌지 힐끗 쳐다보았다한아는 진저리 난다는 눈으로 미래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응시했다한아는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관계를 쌓고 유지하는 일에 피곤함을 느꼈다친구를 사귀어서 얻는 기쁨보단 사귀어서 생길 귀찮음에 중점을 두었으니 반 아이들과 친하지 않은 건 당연했다그런 한아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선 낯설었다쟤가 말도 할 줄 아는 애였어황당해하는 얼굴로 한아와 미래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이들은 음침한 것들끼리 쌍으로 잘 만났네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끝까지 치졸했다.


  “어떻게 알았어?”

  “뭐가.”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미래가 입을 달싹거리더니 문장을 뱉었다겨우 한 문장 되는 말에 조심스러움이 가득 담긴 게 느껴졌다한아는 그다음 교시인 문학 교과서를 가방에서 꺼내다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꺼지라고 하고 싶었던 거...”


  우물쭈물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폼이 퍽 웃겼다화는 못내도 감정은 있구나그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쩌면 없는 게 낫진 않았을까 생각했다상처받을 바엔 느끼지 못하는 쪽이 덜 아팠다인간들은 대체 왜 인어를 혐오할까같은 인()을 공유하는 것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 하급 시민 취급을 했다인어가 없으면 죽어나가는 인간이 그토록 많은데도인간은 자꾸만 가르치려 들어서 탈이다동물을 가두어 동물원을 만들고 바다에서 살던 아이들을 빌딩 가득한 도시 수족관으로 자꾸만 데려왔다그건 그 아이들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일종의 납치다우리 밖에서 구경하며 유리벽을 쾅쾅 쳐대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감정이 있고 의식적 사고를 하는 인어까지 탐냈다온전한 인간은 아니니 동물 취급을 해도 됐고 동물이라기엔 인간과 똑같은 장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활용하기 좋았다자신들이 죽지 않기 위해 인어를 자꾸 죽였다생의 윤리가 꼬여가고 있었다.


  미래의 말에 한아가 생각에 빠져 답이 없자미래는 익숙하다는 듯 혼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아까 나한테 꼬리 보여줘 봐라고 했던 애 있잖아걔 사실 나 인어인 거 이미 알아올해 초에 걔내 엄마가 내 비장 이식받아 갔거든병실에서 만났었어그리고 우리 반 담임선생님 동생도 작년에 내 간 반쪽 이식받았어그래서 그런지 친절하게 대해주시더라내 비장내 간한아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몸에서 직접 꺼내어 볼 수도 없는 장기들이 미래의 입에선 툭툭 쉽게 튀어나왔다자신의 방 어딘가에 있는 물건 말하듯 장기를 이야기하는 미래가 소름 끼치지도무섭지도 않았다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짚고 넘어갔어야 할 근본적인 물음이 한아의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그래서 꼬리는 진짜 있어?”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결국 한다는 게 이런 질문이다꼬리는 인간 따위에게 없으니까오직 미래만이인어만이 가진 것이니 묻고 싶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한아는 그 아이만 가진 것이 궁금했다.


  “.”

  “진짜?”

  “응 있어물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어.”


  미래가 목소리를 얕게 낮추고 이야기했다누군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해본 것이 처음이라는 듯 숫기 없는 얼굴이다한아는 타인과 가까워지길 싫어하는 게 맞다그 이유는 아주 복합적이고 오래된 조건 같은 것이라 불변의 진리 같았다살다 보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마주친다한아는 확률에 약해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상황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계산하기가 어려웠다학교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그날따라 예민하고 호통을 치는 기사님을 만나면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어린 고등학생을 무시하는 가게 직원을 마주칠 때도 감정이 바닥을 쳤다한아의 감정 소쿠리는 내구성이 아주 약한 편이다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 어릴 적엔 툭하면 울고 상처받았다그땐 나이가 무기인 시기라 김한아’ 앞에 오는 한 자릿수 나이로 이해를 받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눈가가 짓무를 정도로 우는 것도매일매일 상처받는 것도 지겨워 한아는 경우의 싹을 자르기로 마음먹었다문을 닫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상황이 보장된 루트만 품었다그제서야 삶이 삶 다웠다.


  그런 한아에게 미래는 보장되지 않은 루트였다미래와 지낸다면 자신이 상처를 받을지 혹은 무탈할지가 확인이 불가능했다원래 한아가 살고 있는 삶의 조건이라면 미래와 엮이지 않는 게 맞았다괜찮을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괜찮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더군다나 미래는 인간이 아니라 변수가 많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아는 자꾸만 미래가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애초에 괜찮지 않다면 인간에게 장기를 선뜻 내어줄 리가 없다그러니 미래는 괜찮을 거다평소라면 길게 이어지지 않았을 대화가 한아의 말로 꼬리가 이어졌다.


  “네 꼬리는 무슨 색이야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엄청 반짝거리던데.”

  “푸른색이야드라마처럼 반짝거리진 않아햇빛 아래에서 보면 그렇긴 한데 연구실에 있으면 햇빛 볼일이 거의 없으니까...”


  대체 이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 있긴 한가미래 입에서 나오는 문장 속에서 자유와 의지랄 것이 없었다억압과 명령이 가득한 곳에서 살다가 죽어야 했다미래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국가에서 할당된 정식 인어이기에 인간들과 사회 교류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아무도 친구가 되려 하진 않았지만대체 인간들은 인어를 인어로 봐준 적이 있긴 한가누군가의 대체품처럼 사용하다 버리고 또 다른 인어를 연구실에서 공장식으로 키우는 것이 끔찍했다나라도 해야지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그들을 한낱 인간 대용이라 대할 때 나라도 그들을 인어로 대해줘야지그래서 한아는 미래가 미래 다운 모습이 보고 싶었다두 다리보다 하나의 꼬리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나리 해변 지나치는 23번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너는?”

  “?”

  “집에 뭐 타고 가냐고걸어 다녀?”

  “... 아니나도 23번 타정부에서 마련해 준 숙소 가는 버스가 그거뿐이라...”

  “잘 됐다나중에 같이 집 가다가 해변에서 내리자.”

  “?”

  “네 꼬리 궁금해서수영 잘하지?”

  “나쁘지 않지.”


  미래가 웃으며 말한다그럼에도 눈빛에서는 네가 나에게 대체 왜라는 물음이 읽혔다세상이 미래에게 단 한 번도 숙여준 적이 없어 미래는 지금 모든 게 낯설었다인간 친구를 사귀는 것도동등한 입장에서 인간과 이야기를 해본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한아는 티를 내진 않았으나 탄식했다세상이 얼마나 박하게 굴었으면 고작 이런 걸로 웃고 기뻐하나미래와 한아가 가까운 미래를 약속했다춥지 않고 날씨가 좋은 날 둘은 해변에서 내릴 것이다인어에게만 존재하는 꼬리를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한아는 미래가 마음에 들었다.


*


  한아와 미래는 그렇게 가까워졌다아침에 학교를 오면 가장 먼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찾았다급식을 함께 먹었고 쉬는 시간 내내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기 바빴다그들은 반에서 비주류에 속했으나 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항상 다수가 옳은 쪽에 서는 것은 아니었다학교는 같은 반 아이들을 일주일에 다섯 번씩이나 볼 수 있는 규율과 제도가 확립된 공간이다그 나이 때 아이들은 매일 봐도 매일 즐겁기에 아침 조례 시간마다 시끌벅적하게 반가워했으나 한아의 경우 반가움의 농도가 더 짙었다이유는 미래는 이 규율과 제도 속에서 예외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래는 아무 말도 없이 삼일을 내리 결석했다주말까지 보낸 후 월요일에서야 한아와 만날 수 있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미래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한아는 몹시 당황스러웠다어릴 적 읽은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애가 정말 물거품처럼 사라진 건 아닐까라는 결론을 도출하다 이내 그만뒀다.


  오랜만에 마주한 미래의 얼굴에는 동그란 안경이 걸려있었다까만 뿔테안경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미래의 콧잔등에 내려앉아있다안경 아래의 왼쪽 눈이 하얀 거즈로 가려져있었다한아는 앞문을 열고 자리로 다가오는 미래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문에서 1분단 끝자리는 고작 몇 미터 되지도 않는 대각선 거리였는데 그 짧은 사이에 미래가 책상 모서리에 여기저기를 부딪혔다숨소리도 작은 미래가 우당탕 거리며 오는 광경이 낯설었다미래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큰 소리를 내며 한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아 안녕.”


  오랜만에 인사를 건네는 게 자신도 머쓱한지 미래가 뒤통수를 몇 번 긁적였다여기서 어떤 대답이 적절할지 몰라 한아는 고민했다한아의 마음속에서 가장 많이 부유하는 감정은 단연 걱정이었다그리고 조금의 서운함과 반가움한데 뒤섞여서 어떤 감정부터 꺼내야 할지 한아는 조금 멀미가 났다감정은 가슴속에 묵혀두면 고여 썩기 마련이기에 한아는 차례대로 천천히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 왜 안 나왔어걱정했잖아.”

  “... 병원에 좀 다녀왔어미리 말 못 해서 미안나도 대부분 갑자기 가는 일이 많아서.”


  한아는 그 말이 미래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미래가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는 순간이 있긴 할까타의에 의해 병원에서 자신의 무엇을 잃고 돌아오진 않을까삶이 잔인했다미래의 가려진 한쪽 눈을 보자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메슥거렸으나 티를 낼 순 없었다한아 자신도 인간이었으니까미래를 그렇게 만든 존재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는 인간이었으니까우습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를 말이 없기도 했다.


  “눈은... 왜 그래?”


  어렵사리 거르고 걸러낸 물음이었다알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했다미래의 눈에는 또 어떤 사연이 짓눌려 있을까또 어떤 인간이 미래의 것을 탐낸 걸까미래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동네에 행복 슈퍼집 애기 알지열두 살 이랬나슈퍼 아저씨 딸이 눈이 잘 안 보인대그래서 어... 주고 왔어생각보다 일찍 끝나더라 잘 쉬고 왔어안경도 사주시더라그래서 이왕 사준다는 거 제일 비싼 걸로 골랐다잘 어울리지미래가 내뱉는 말마다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주고 오긴 뭘 주고 와한아는 그 소리가 빼앗겼다는 말처럼 들렸다이건 강도질이다도둑질이다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게 없었다.


  화를 내기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울어버리기엔 한아는 미래에 비해 잃은 게 하나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저 실없이 안경이 잘 어울린다며 말을 얹었다미래는 희미한 웃음으로 응답했다미래가 왼쪽 눈을 잃어도 미래는 미래다미래가 이제 오른쪽 세상만을 바라봐도 미래는 미래였다비록 한아가 왼쪽에서 다가오면 조금 늦게 알아차리고 책상과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지만 어쨌든 미래였다한아는 걸음이 느려진 미래를 위해 발맞추어 걸었다.


  안경은 시작이었다미래가 가끔씩 학교에 나오지 않을 때마다 한아는 이번엔 또 어떻게 발맞추어 걸어줄까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부디 이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랐다그거면 된 거라고 위안했다.


*


  날씨가 좋았다하늘은 청명하고 바다는 푸르러서 모든 게 선명한 날이었다물이 가득한 동네라 안개가 끼는 날이 많았는데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희귀한 하루였다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불어 나뭇잎도 기분 좋게 흔들거렸다바다도 파도를 잃은 것처럼 잔잔했다미래는 꾸준히 학교에 나왔다당연했던 게 정말로 당연해진 거 같아 한아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문학 시간에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고전 소설도 오늘만큼은 지루하지 않았다창가 커튼이 살랑거리며 나풀거리는 자리에 앉아 한아는 창밖을 내다봤다생기 가득한 열기로 시끄럽게 체육 수업을 받는 운동장의 아이들이 보였다살아있는 것들이 곳곳에서 한아의 피부로 느껴졌다오늘따라 미래는 조금 더 차분했다평소에도 소란스럽고 활발한 성격은 아니긴 했으나 그 정도가 더 깊었다한아가 쫙 핀 손바닥을 들어 미래의 눈앞에서 몇 번 흔들었다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미래의 시선이 그제서야 한아에게 닿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야 별일 없어.”

  “기분 안 좋아 보이길래.”

  “그랬나한아야.”

  “?”


  한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유약했다호기롭게 이름은 불렀으나 잠시 미래는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한아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미래는 자신이 기계는 아니지만 무언가 오작동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돼?”

  “오늘되기는 하는데...”

  “그러면 나 수영하는 거 구경할래왜 그때 내가 꼬리 보여준다고 그랬었잖아.”

  “아 맞아근데 왜 오늘이야?”

  “그냥날씨가 좋길래.”


  미래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방금까지 흐렸던 표정과 상반되는 얼굴이었다그 언젠가 미래와 한아가 한 약속이 있었다인간은 없고 인어 미래만 가지고 있는 꼬리를 유일하게 궁금해했던 인간미래는 오늘 그 약속을 지켜주고 싶었다약속은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단어였으나 실은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었다한아의 볼이 슬금슬금 올라가더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그래오늘 해변에 가자응답이 날씨처럼 시원하게 돌아왔다.


  학교가 끝나고 둘은 해변을 지나치는 버스에 올라탔다맨 뒷자리에 붙어 앉아 창문을 바라보며 내릴 역을 셌다바닷가 동네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다가 있다는 거였다어쩔 땐 짜고 비린 바다가 꼴 보기 싫다가도 오늘 같은 날에는 바다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도시에 살았다면 아마 미래의 꼬리를 보긴 어려웠겠지처음 보는 인어의 꼬리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가늠이 안됐다그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만 접했지 실제 움직이는 인어의 꼬리는 처음이었다.


  탈탈거리며 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해변 앞 정거장에서 멈춰 섰다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벨을 누르고 한아와 미래가 버스에서 내렸다여전히 날씨가 맑았다동네 사람들만 알음알음 아는 해변에는 운이 좋게 아무도 없었다새까만 돌들이 층층이 쌓여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파도 앞에서 오랜 시간 동안 깎여버린 돌들은 뾰족하고 울퉁불퉁해서 쉽게 걷기 어려웠다자주 부딪히는 미래를 위해 한아가 손을 내밀었다본래 바다의 주인은 미래인데 한아가 미래를 이끌었다역설적이었다.


  미래는 바다가 처음이었다관 같은 유리박스가 아닌 넓은 바다에서 헤엄쳐보는 일이 평생소원인 시절도 있었다미래가 한아의 손을 놓고 두 다리를 바다에 담갔다점점 더 깊은 물로 나아갔다딱히 무섭진 않았다태초에 미래의 근본이 있던 공간이었다발목을 찰랑거리던 물이 명치까지 왔을 때쯤 자연스럽게 두 다리가 하나의 꼬리로 모아졌다철썩거리며 한아에게 물을 튀기니 미간을 구기며 웃는다저 먼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는 미래를 향해 한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미래야!”

  “...”

  “멋있다네 꼬리.”


  새파랗게 눈부셨다반짝거려서 눈이 아플 정도였다세상에서 빛나는 모든 보석을 가져다 대도 기죽지 않을 거 같았다한아의 말에 미래가 무겁게 웃었다수면 아래로 꺼지더니 한참을 유영했다자유로움이 온몸을 감쌌다한참을 헤엄치며 바다를 느끼던 미래가 뭍으로 천천히 올라왔다결심한 듯 고개를 한번 끄덕거리더니 머릿속에 흐트러져있던 문장을 조합했다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아야.”

  “응 왜?”

  “나 내일부터는 학교에 오지 못할 거야.”

  “?”

  “갑자기 통보해서 미안해.”

  “또 병원에 가는 거야아님 연구실로 돌아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아가 재촉했다두려움이 엄습했다물의 것들은 바다와 떨어지면 좋을 게 없었다그 언젠가 어린 한아가 품에 안았던 물고기가 그랬다그때 그 물고기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한아의 눈앞에서 오래되어 먼지 쌓인 기억이 울렁거렸다바다에서 올라온 미래가 한아의 앞에 가만히 있는 게 이질적이었다.


  과연 내일 만일까영영 오지 않는 건 아닐까소름이 돋았다이번에는 또 뭔데간도 뺏기고 비장도 뺏기고 각막까지 뺏겼는데 또 뭘 가져가겠다는 건데한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세상이 잘 해준 거조차 없는데 가진 거마저 악착같이 빼앗아 드는 꼴이 역겨웠다그나마 그동안은 괜찮았다미래는 자주 떠났었지만 자주 돌아왔다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좀 달랐다미래가 운다진주알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소리조차 없다미래는 매번 죽임을 당하다 못해 소리까지 죽이며 울었다삶이 악당 같다이 아이의 인생에 대체 영웅이랄 게 있는지 의문이었다.


  우는 입에서 더듬더듬 단어들이 새어 나왔다이번엔 심장이래심장이라 그런지 하루 전에는 알려주더라근데 너한테 꼬리를 보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그래서 왔어모든 걸 다 빼앗긴 인어가 한아 앞에 있다주어진 시간이 적었다자신의 마지막을 쥐어짜서 미래는 한아에게 선물했다해변 근처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매일 버스를 타고 가던 미래의 앞으로 검은색 세단이 도착했다심장이 중요하긴 한가 봐자동차로 데리러 와주네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미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짓무른 눈가로 굳어있는 한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아야.”

  “......”

  “너는 내 인생에서 기억 남을 유일한 인간이야.”

  “......”

  “너무 슬퍼하진 마.”


  한아가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소리 내며 울었다울음이 서글퍼서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소리를 낮췄다바람도 멈춰 서서 한아가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배려했다한아가 고개를 흔들며 가지 말라 미래의 손을 붙잡았다축축하고 차가웠다미래가 다정 어린 손길로 단호히 손을 떨어트렸다유약한 목소리로 미래가 한아에게 안녕을 고한다고마워잘 있어아프지 마끝까지 남 걱정이었다자신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심장을 내어주는 주제에.


  미래가 점점이 멀어진다차에 올라타자마자 빠른 속도로 한아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멍했다이별은 형체가 없어서 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따져 물을 수도 없다누군가를 죽여가며 살리는 것도 구원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꽉 찬 교실에 딱 한 쌍의 책상과 의자만이 텅 비어있었다주인을 잃은 자리가 공허했다그제야 실감이 났다미래가 떠났다미래는 누군가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떠났다기다려도 오지 않는 게 있다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한아에게는 내일이 있지만 미래에게는 내일이 없다모두에게 미래가 있는데 오직 미래에게만 미래가 없다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윤지예(글로벌지역학부)

좋아하는 계절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다가올 2022년을 조금 더 일찍 기분 좋게 시작하라는 뜻이라 생각이 듭니다. 

기회주신 상명대학교 학보사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