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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상

[평론 당선작]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 작성일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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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314
윤소영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작품 감상 링크: https://blog.naver.com/smuhakbo/222592443025


  영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예술이며 산물이다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그리고 방식그곳에서 지켜져야 할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상기시키는 기능을 한다물론 영화를 보고 그것을 개인화 시키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더 나은 삶의 필요성을 담지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하나의 문화예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혐오”, “무관심”, “언택트” “개인주의” 이 단어들은 내가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현주소다코로나로 가속화된 언택트 사회 속 우리는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은 타인의 관계로부터 정의되는 사회적 동물이다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한 객체로서 살아가지만유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그 연결이 확장되어 공통의 목적과 이해관계를 기초로 하는 개인들의 집합인 사회가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다니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속에 너무도 흔히 존재하는 누군가의 할아버지아버지아들이며 나의 가족의 이야기이다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그걸 왜 알아야하는데?”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하지만 나는 그저 묻고 싶다이것이 너혹은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와 지켜져야 할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평생을 성실하게 목수 일을 하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그의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속에서 그는 이라고 불려진다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인이자 할아버지인 그는 목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집 앞 마당에 개똥을 치우지 않는 이웃에게 잔소리도 하고 항상 시끄럽게 떠드는 이웃에게 주의를 주기도 한다다니엘은 그렇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며 한 인간이다다니엘 뿐 만 아니라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특별히 영웅적인 인물로 설정되지 않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다영화의 제목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인 것처럼 영화는 꾸준히 수많은 군중 속에서 ’ 자신을 강조하고 드러낸다이는 다니엘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구인정보기관을 걷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구직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에 찾은 다니엘의 모습은 북적이는 센터 사람들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고 이것은 영화의 제목에서 강조하는 가 다니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영화는 다니엘이 평소에 앓던 심장병이 악화되면서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김을 알리며 시작된다의사는 다니엘에게 일을 잠시 쉬고 휴식을 취해야한다고 말한다건강 악화에 따라 당장은 일을 쉬어야하는 다니엘은 쉬는 동안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국가는 그에게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며 질병수당을 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다니엘은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마냥 받아들일 수 없다질병수당을 받지 못하면 그는 당장 추위와 굶주림에 잠식되기 때문이다그는 결과에 항고하기 위해 관공서에 전화를 걸지만 길고 긴 관공서의 구린 전화 대기음 끝에 들려오는 말은 정식 통보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뿐이다하지만 다니엘에게 당장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에 그는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다답답한 마음에 관공서에 찾아간 그는 또 한번의 좌절을 맞이한다모든 신청은 인터넷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관공서 직원은 말한다.


  영화는 다니엘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제동을 거는 허울뿐인 제도와규칙들을 끝없이 나열한다그 중 가장 첫 번째는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어느새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아버리는 기계의 발전이다문명의 발달과 혁신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그저 사회부적응자로 취급되며 주류에서 밀려나 도태된다조금 더 편리하고 나은 세상을 위해 개발되는 기계서비스는 오히려 최하류층을 양산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기재로 작용한다이는 관공서에서 실업급여 신청을 인터넷으로만 해야 하는 줄 알았지만 종이로 뽑아 신청할 수도 있었다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뿐만 아니라 영화의 시작부분에서 어두운 화면 속 기계적으로 다니엘에게 건강상태를 묻는 담당자의 태도와 목소리는 다니엘을 궁지에 몰아넣는 기계와 혁신을 상징화 하는 부분이다심장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온 다니엘에게 의료진은 심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손발가락팔에 대한 상태만 묻고 심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다니엘의 말은 묵살한 채 그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일관적이며인간적 감정조차도 배제되어 보이는 의료진에 태도에 다니엘은 심장과는 점점 멀어진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이는 심장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신체적인 단어를 넘어 마음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제도기계를 상징화 하는 의무적인 태도의 의료진은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다니엘과 케이티가 나누는 연대즉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은 기계적이고 차갑게 변해버린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감정일 뿐인 것 이다영화에서 다니엘은 딜런에게 코코넛과 상어 중에 사람을 더 많이 죽이는 건?” 이라는 질문을 한다오랜 시간 고민 끝에 딜런은 코코넛이라고 대답하고 다니엘은 정답이라 말한다딜런과 다니엘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퀴즈는 달콤하고 따뜻한 봄날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복지제도가 그것에 의지하는 수많은 케이티다니엘을 궁지에 몰아넣고 죽어가게 만드는 주범임을 상징한다관공서에 다니엘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다니엘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영화 속 관공서는 소외된 계층으로 가득 차 있고 이들 모두는 다니엘과 케이티처럼 국가가 만들어 놓은 한낱 작은 제도에 의지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다하지만 수많은 다니엘과 케이티를 위해 만들어진 달콤한 코코넛들은 오히려 상어처럼 눈에 보이는 위협보다도 더 위협적으로 그들의 삶 주변부에만 자리할 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더 나은 삶을 위해 찬양되는 디지털시대는 늘어난 수명과 함께 고령사회에 접어든 사회의 흐름은 간과한 채 세대 간 소통의 부재를 가속화 시킨다또한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견고히 하며 사적공적 복지를 약화시킨다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시대의 약화를 초래하는 것이며그렇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새로운 것은 누군가의 현재를 위협하기도좌절시키기도 한다딱딱하고 차가운 기계에 가로막힌 다니엘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야할 법의 부재이다영화는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관공서 직원들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의 표상을 취하지만 정작 도움을 받아야하는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차갑고 냉정하기만 하다관공서 직원 중에 유일하게 다니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친절한 직원은 규칙에 어긋난 서비스라며 핀잔을 받는다결국 다니엘의 인터넷 신청을 도와주는 건 또 한명의 약자인 흑인 청년뿐이다이처럼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내부에서 표출되어 해결되지 못하고 그들의 문제로만 남게 된다이는 영화 종반부 다니엘이 실업 급여를 포기하고 관공서에서 나와 벽에 페인트로 영국 사회에 내던지는 경고의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구린 통화음을 바꾸고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원한다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응원을 하는 건 소외받는 계층이며흑인수많은 다니엘들 뿐 이다.


  영화에서는 특정한 악인이나 주인공의 적대자는 등장하지 않지만 관객은 다니엘의 답답한 상황에 분노를 슬픔을 느낀다이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조차 모르겠는 근본적인 원인의 부재 때문이다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안타고니스트로 작용하는 것은 거대한 사회국가이며 이들로 인해 당연한 권리를 제공받아야 할 주인공들의 목표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몸이 아파서일을 할 수 없고 아프면 질병 수당을 받으면 되는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권리는 그들에게는 쟁취해야할 목표로 자리 잡는다주인공들의 안타고니스트는 빠르고 효율적인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관공서 직원들로 상징화 된다그들은 그저 민주주의복지국가의 충실한 하수인으로서만 존재하며 표면적으로만 국민의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하수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에 좌절하는 다니엘에게 관공서 직원들은 앵무새처럼 사무적인 안내만 반복한다그리고 그곳에서 다니엘은 케이티를 만난다

케이티는 다니엘과 같이 실업급여를 받는 사회적 약자이다하지만 상담시간에 단지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지원금은 삭감되고 만다다니엘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분노하고 사람들 또한 케이티의 실수를 괜찮다며 넘어가주지만 로봇 같은 관공서 직원에게 인간적 관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계속해서 복지국가의 모순에 대해 질문한다그들이 말하는 복지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것은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영화 속 모순은 비단 영국 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지금은 개선되었지만 2019년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엔 장애등급제라는 것이 존재했었다이는 국가가 정해놓은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장애정도를1~6등급 까지 정해놓고 등급을 매기는 제도이다등급에 따라 지원되는 지원금의 정도활동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의 차이가 있기에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들에게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장애등급제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장애인 개개인의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2021년 현재 폐지되었지만 활동보조 축소실질적인 장애인의 처우 개선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다여전히 장애인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그들의 생사는 공공기관이 정한 서류 한 장에 결정 될 뿐이다이는 영화 속 다니엘의 생사가 관공서에서 보내진 종이 한 장에 결정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할 다니엘과 케이티는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벼랑 끝에 몰린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서로가 나누는 작은 연대이다그들이 나누는 연대는 최소한의 인간적 나눔이며 위로이다다니엘은 그들의 허름한 집을 고쳐주고차가운 공기가 가득찬 집 창문에 비닐을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며 그곳에 온기를 채워나간다그렇게 케이티와 다니엘은 어느새 친구가 되고 차가운 현실 속 따뜻한 감정을 나누며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보여준다케이티를 향한 다니엘의 위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그는 식료품점에서 굶주림을 못 참고 통조림을 까먹는 그녀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살기 위해 성매매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발견하고 나서도 그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작은 연대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잔인한 현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케이티는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살고자 발버둥 치고 이러한 케이티의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욕구는 낡아빠진 집을 계속해서 청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케이티는 더러운 화장실 벽을 벅벅 문지르며 닦아내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된 타일은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리고 만다화면 전경에 배치된 두 개의 벽 사이로 주저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찌그러진 깡통의 모습을 형상화 한다살아가야하기에살고 싶기에 행해지는 그녀의 여린 날개짓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현실은 그녀의 삶을 더욱 잘게 조각낼 뿐이다


  케이티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이력서를 돌리고 청소 일을 하지만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영화 초반부 다니엘의 호의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녀의 눈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빛을 잃어간다마치 점점 벼랑 끝에 몰리는 그녀의 생활을 대변하듯 말이다영화 속 케이티가 위생 용품을 훔치는 장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존재하는 영국 사회에서 낯설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다소외된 사람들의 구제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복지제도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모순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20165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과 휴지를 사용하는 일명 깔창 생리대 이슈는 영화 속 케이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이는 불과 5년 전의 일이다영화는 영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관객은 왜인지 다니엘과 케이티가 살아가는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닮아있음을 느끼게 된다이는 영화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어쩌면 현재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식품 지원소 구석에서 뭔가에 홀린 듯 통조림 뚜껑을 따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케이티를 본 안내 직원은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고 케이티는 너무 배가 고팠다며 눈물을 흘린다영화는 케이티의 눈물 어린 호소를 비웃기라도 하듯 살기 위해 성매매까지 감행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훼손은 존재자체의 위협과 다름없다이러한 위협은 다니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질병 수당을 기각 당한 다니엘은 실업 급여라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노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를 관공서에 제출해야 한다살기위해 자신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임을 증명해야하는 절차는 한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짓밟는다결국 그는 허울뿐인 자기소개 작성 특강을 듣고자신이 평생을 쌓아왔던 목수 경력을 들어 이력서를 돌린다하지만 다니엘의 몸은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의사 또한 그에게 쉬어야한다고 말한다결국 일을 하지 못한 그는 관공서에 자신이 들은 자기소개서 특강 이력과 취업을 위해 노력한 증거를 제출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며 실업 급여대상이 안된다고 말하고 다니엘의 자기소개서가 특강에서 안내된 양식처럼 기재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는 제재 대상이 된다이는 사실상 다니엘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것이다관공서는 다니엘에게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지만 그에게 선택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정해진 규칙을 강요받을 뿐이다아파서 일을 못하지만 그 고통과 상태의 정도를 증명해야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그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결국 그는 언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질병 수당 결과에 항고를 하기로 결정한다


  영화의 창작자인 켄 로치 감독은 복지국가의 이상인 영국의 구조적인 모순과 허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영화 속 사회는 복지 국가의 주체만 존재할 뿐 대상은 부유한 채 고정되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뿐이다이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순간에 삶의 방향을 잃은 우리사회의 소시민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어쩌면 약자를 위한 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법은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기에는 너무도 허접하며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영화에서 존엄성과 권리를 박탈당한 인물들은 케이티와 다니엘뿐만 아니라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식료품 지원소의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에 부유하는 노숙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감독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강요하지는 않는다이는 어떠한 감정의 호소에도 의지하지 않는 객관적인 카메라 워킹에도 드러난다다니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질병 수당 항고 날 그는 돌연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결국 항고 일에 전하고자 했던 그의 말은 케이티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카메라는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미동 없는 다니엘의 모습을 케이티와 관계자 사람들의 어깨너머 풀숏으로만 보여준다영화의 종반부 다니엘의 장례식에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말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아닙니다또한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나는 보험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나는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나 다니엘 블레이크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은 일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였고 그렇기에 정당한 복지 혜택을 받아 건강을 되찾고 다시 그가 사랑하는 목수 일을 하며 한 인간으로서 그가 누려야 할 삶의 권리를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였다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다니엘과 케이티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고 그로인해 다니엘은 모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기표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케이티는 삶의 밑바닥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더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야만 했다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강했던 다니엘은 자신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대변해 세상에 소리쳤고 함께 분노했다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견고하게 자리 잡은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삶은 붕괴됐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나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영화 속에서 감독이 꼬집는 복지 구조의 모순노동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사람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기계와 문명의 혁신은 과거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가까이에 존재하는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이다영화를 보는 누군가는 끝없이 항의하고 불평하고 질문하는 다니엘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영화에 귀기울여야하는 이유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온한 삶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앞으로 남겨질 수많은 다니엘들이 자신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가족과이웃과 함께 연대하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감독은 말한다.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




황혜진(영화영상전공)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능할까요? 영화를 전공하기 전까지 저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의문점을 가지는 것부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그런 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내려갔습니다. 제 작은 글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다니엘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정말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사랑하시고 행복하세요!